자유롭게 쓴 글

계란

필85 2018. 10. 12. 23:32

마당 한쪽 켠에 닭장이 있었다. 엄마는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 할 즈음에 닭장에서 계란을 꺼내 달라고 내게 말하곤 했다. 암닭이 알을 놓는 자리는 조금씩 이동이 있었다. 조심조심 바닥에 깔린 볏집을 뒤적이며 계란을 찾아내는 것도 심심한 시골생활의 스쳐가는 재미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내가 찾아온 계란의 숫자와 엄마가 기대한 숫자가 맞지않았다.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한대 얻어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생계란을 앞 이로 톡톡 쳐서 한 쪽에 구멍을 내고 반대편을 조심스럽게 깨서 쪽 빨아먹을 때의 비릿함과 고소함이 주는 유혹이 나를 강하게 당기기는 했지만 그날은 결단코 아니었다.

 

나는 방으로 달러가서 제법 묵직한 돼지 자금통을 안아들고 문밖으로 뛰처나갔다. 이것만 있으면 내 한 몸 굶고지내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을 했으리라. 엄마는 기가찼는지 잡지도 않았다. 당당한 내 발걸음은 아랫마을로 향한 다리에 다다랐을 때 쯤 완전히 허물어 지고 말았다. 날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놈에 손아, 안들어올끼가, 밥 안묵을 끼가"

꽤 먼거리에도 귀에 쏙 들어오는 엄마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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