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달에 울다_무라야마 겐지

필85 2019. 4. 29. 00:10
"안개처럼 아래에서 피어올라오는 소리는 몇만 마리의 누에가 쉬지 않고 뽕잎을 뜯어 먹는
소리다."(10쪽)
아득한 옛날, 열살 근처의 내 기억을 마루야마 겐지가 쓴 문장에서 되찾았다. 새벽비 소리에
잠이 깼다고 생각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코앞에 하얀 생명체들이 잠을 잊고 사부작사부작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빗소리 같기도 하고 비단옷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가
지금에서야 귓가에 맴돈다.

  <달에 울다>의 문장은 시처럼 읽힌다.
(팔고 남은 사과를) "올해는 모두 술로 만들어버리자. 봄이 될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마시고,
마시면서 취한 채로 지낸다 해도 나쁘지 않겠다. 잠들기 위해 마시고 마시기 위해 잠드는
것이다."(89쪽)

"어떻게 40년이 지났을까, 수없이 돌아봐도 그곳에는 야에코가 조용히 서있다. 그로부터
몇십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를 제쳐놓고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101쪽)

모든 이야기는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자의 방에 펼쳐진 병풍속에는 4계절의 모습이
담겼고, 30년전, 20년전, 10년전 그리고 현재, 주인공은 40대이다. 야에코 아버지의 죽음,
야에코와의 사랑, 그녀의 출향과 귀향이 각각의 계절과 연대에 나뉘어서 아야기가 전개된다.

  두번째 소설인 <조롱을 높이 매달고>의 주인공도 40대이다. '회사에 가려고 아침에 집을
나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나는 가족들과 완전하게 헤어지고
늙은 개 한 마리를 낡은 자동차에 태우고 고향을 찾아왔다. 한때 온천관광으로 붐볐던 마을은
이제 몰락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 한명 외엔 아무도 살지 않는다. 텅빈 마을에서 한동안
생활하면서 남자는 다시 살아 갈 정신과 힘을 모은다.

이 소설들은 도시를 떠나 고향에서 작품에만 몰두하던 작가가 40대에 쓴 글이다. 소설속의
한 남자는 40에 사랑하는 한 여자를 땅에, 가슴에 묻고, 또 다른 한 남자는 고향에 돌아와서
마음을 추스리고 어찌되었던 다시 한번 살아보기로 한다.

작가는, 40이전에는 '겁에 질려왔으며', '잃는게 두려워 분투했음에도 잃어만 갔다'면,
40이후에는 '이제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나역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이나 '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면된다. 나는 나대로 내 멋대로 살아가겠다.
단순한 이치였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찌 40대 뿐이겠는가? 50을
한참이나 넘긴 내게도 필요한 구절이다.

무라야마 겐지의 소설은 시처럼 읽히고 영화처럼 보여진다. 그기다가 뿌리로부터의,
나로부터의 구원과 자유를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