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슬픔이 달래지기를 바랄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나탈리아 긴츠부르크)
소설의 첫 페이지에 적힌 문장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소설의 주인공은 글쓰기로 슬픔을 달래고 있다. 아무런 예고나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자살한 (연인에 가까운) 친구에게 주인공, ‘나’는 글을 쓴다. 자살한 친구에게는 세 명의 부인이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주인공은 그의 제자였다.
소설의 시작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자살한 교수와 주인공 간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세 번째 부인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부인은 교수가 남기고 간 개를 맡아달라고 주인공에게 부탁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지만 결국 주인공은 세 들어 사는 뉴욕의 비좁은 아파트에 대형견을 받아들여야 했다.
개의 이름은 ‘아폴로’다. 아폴로는 주인공보다 몸무게가 더 나갔다. 산책을 가다가 걷기를 포기하고 바닥에 엎드리면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는 덩치였다. 과묵하고 나이도 많아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주인공은 아폴로와 함께 산책하고 병원에 다니고 비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면서 친구가 되어간다. 사랑에 가까운 우정을 쌓아간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첫 번째 주제는 문학에 관한 것이다. 소설에는 많은 작가와 작품이 등장한다. 레베카 웨스트(영국 소설가), W.G.제발트(독일 작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이탈리아 작가), 이자크 디네센(덴마크 작가, 대표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 작품 속 대사, 내용을 인용하여 문학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저자는 대중 소비와 명성을 바라고 출판하는 대중들이 많아졌다고 비판한다. 자살한 교수는 ‘자가 출판의 부흥이 재난’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문학의 죽음이자, 문화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문장도 있다. 지난주에 읽었던 샌드라 거스의 <묘사의 힘>에서 ‘말하기’보다 ‘보여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 대목도 있다. ‘아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대해 쓰라’고 교수는 가르쳤다. 교수는 ’거의 모른다고 가정하고, 보는 법을 배우기 전에는 아는 게 없다고 가정하십시오.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예를 들어 거리에 나갔을 때 보이는 것들을 기록해요.‘라고 말했다.
두 번째 주제는 ’개의 삶‘이다.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개의 삶‘이란 단어는 맞지 않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은 사람이기 때문에 ’개 주인(견주)으로 산다는 것‘이 맞다. 내가 주제를 ’개의 삶’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소설의 초점이 아폴로의 행동과 생각, 사색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인공 ‘나’는 소설의 중심이 되거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아폴로였다.
처음 아폴로를 대면했던 시점부터 서로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과정은 재미와 감동을 함께 준다. 특별한 취향을 보이지 않던 아폴로가 주인공이 책을 읽어주자 집중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쓴 편지를 개에게 낭독하다니, 정신 이상 징후로 치부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주인공은 아폴로에게 책 읽어 주는 일정을 일과에 포함시켰다.
이 책으로 개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리나 공원에서 지나치는 개를 무심하게 보낼 수 없게 되었다. 넌 어떤 삶을 살고 있니, 말 걸고 싶어질 것 같다.
책을 덮고 보니 또 다른 생각이 스며 나온다. 아폴로는 자살한, 연인에 가까운 친구가 기르다가 그녀에게 보내 준 개다. 아폴로를 만나 같은 공간에서 살면서 우정을 쌓고 다시 그를 죽음으로 보내는 과정은 이별인사 없이 떠난 그녀의 친구(교수)를 보내는 절차로 이해된다. 아폴로와의 삶을 교수에게 들려주면서, 주인공은 교수를 잃은 슬픔을 달랠 수 있었다.
개와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견주라면 읽어볼 만하다.
(추신)
“잘 지냈어, 친구? 낮잠을 푹 잤니? 밖에 나가고 싶니? 왜 다른 개들이랑 놀지 않니? 넌 천사니? 날 영원히 사랑해 줄 거니?”
(‘책날개’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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