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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작품선_오스카 와일드_220417

필85 2022. 4. 17. 21:16

https://youtu.be/ny8itbDkM2w

나는 진작 알고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를 읽지 않고 영국 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오스카 와일드는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문학비평 서적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작가다. 그의 머리로부터 나오는 천재적인 스토리와 입에서 나오는 유머와 독설, 몸을 감싼 화려한 옷차림, 동성애까지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 영국의 문제적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오스카 와일드를 읽으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에 다가가기 위해서 먼저 단편집을 읽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민음사에서 펴낸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은 내게 일종의 애피타이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단편소설 4, 희곡 2편이 실렸다.

 

  “높고 둥근 기둥 위,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행복한 왕자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었다. 왕자의 몸은 순금으로 얇게 박이 입혀져 있었고, 눈은 반짝이는 사파이어였고, 검의 손잡이 끝에는 크고 붉은 루비가 빛을 발했다

(<행복한 왕자> 첫 문단)

 

소설 <행복한 왕자>의 내용은 익히 알았지만 저자가 오스카 와일드라는 것은 이번에 책을 통해 확인하였다. 궁전 안에서 늘 행복했던 왕자였다. 그가 죽자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도시의 높은 곳에 황금으로 옷을 입힌 동상을 만들었다. 왕자는 그때야 알게 되었다. 이 도시에 추하고 비참한 곳이 있다는 것을. 도시는 행복한 곳이 아니었다.

 

잠시 쉴 곳을 찾아 동상에 내려앉은 제비에게 왕자는 심부름을 부탁하였다. 왕자는 자신의 몸을 치장하고 있는 보석과 금을 떼어 추위에 떨고 있는 청년에게, 성냥팔이 소녀에게, 굶주린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볼품없는 조각상이 되었다. 시장이 이를 발견하고 동상을 무너뜨려 용광로에 녹여버렸다.

 

하느님이 천사에게 이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를 가져오라고 하자, 천사는 용광로에서도 녹지 않은 왕자의 심장과 죽은 제비를 가져왔다. 하느님은 제대로 골랐다고 하면서 이 귀여운 새는 내 천국의 정원에서 영원히 노래를 부르고, 행복한 왕자는 내 황금도시에서 나를 찬양하게 하리로다.’하고 말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행복한 왕자>는 뒤이어 소개되는 네 편의 소설과 결이 다르다. 나머지 소설은 영국 귀족 계급의 사치와 허영을 꼬집는 데 반해서 이 소설은 동화 같은 문체와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왕자는 시선을 달리하게 되면서 새로운 것을 보게 되고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떼어내어 시민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왕자의 시선은 저자의 시선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을 사회주의자 또는 무정부주의자라고 일컬었다, 고 작품 해설자는 말한다.

 

  <아서 새빌 경의 범죄> <비밀 없는 스핑크스> <켄터빌의 유령> <모범적인 백만장자>, 네 편의 단편소설은 짧은 분량이지만 독자를 빨아들이는 매력은 장편소설 못지않다. <아서 새빌 경의 범죄>에서 손금을 봐주는 사람이 아서 경에게 살인을 저지를 운명이라고 말한다. 아서 경은 자신의 운명이 시키는 대로 살인을 저지르기 위한 계획을 준비하고 실행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새벽까지 길을 헤매다가 아서 경은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의 발을 들어 템스 강에 빠뜨렸다. 그가 살해한 남자는 그에게 운명을 가르쳐 준 수상가(手相家)였다.

 

네 편의 소설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풍자와 교훈이 문장 사이에 넘쳐난다.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를 사는 귀족계급에 퍼져있는 체면과 위선, 가면을 벗겨 맨 얼굴을 보여준다. 그의 소설에는 칼날 같은 예리함만 있는 게 아니다. <모범적인 백만장자>에서는 선한 인간에게 닿은 부자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게 해준다.

 

  소설집에는 희곡 두 편도 실렸다. <살로메><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이다. <살로메>를 먼저 들여다보자. 예언자 요카난을 붙잡아 둔 유대의 왕 헤롯은 젊고 예쁜 살로메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살로메는 헤롯왕의 형수였던 헤로디아의 딸이다. 헤롯왕은 형을 죽이고 헤로디아를 자기 부인으로 삼았다.

 

지하 감옥에서 들려오는 요카난의 목소리에 매혹당한 살로메는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더욱 그에게 빠졌다. 하지만 요카난은 시대를 예언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살로메는 헤롯왕을 위해 춤을 주고 그 대가로 요카난의 머리를 가져달라고 하면서 연극은 종말로 치닫는다.

 

이 희곡은 오스카 와일드가 대변했던 유미주의에 속한 작품이다. 유미주의는 미를 위한 미, 예술을 위한 예술을 의미한다. 살로메는 요카난과 키스하기를 원했다.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헤롯왕에게 요카난의 머리를 가져오게 했다. 살로메는 요카난과 입을 맞출 수 있었으나 목숨은 붙어있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입을 맞출 수만 있다면 목숨이 붙어있든 아니든 상관없는 살로메의 행동에서 나는 지독한 유미주의를 읽는다.

 

마지막 작품인 <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에서 제목이 주는 진지함에 나는 끌렸다. 이 희곡은 어니스트란 이름에 매료된 두 쌍의 남녀 주인공의 에피소드다.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맛깔스런 대사와 당시 귀족사회에 대한 비꼼과 웃음, 의미의 이중성이 독자에게 생각거리를 준다. 꽉 짜인 이야기 구조는 오스카 와일드의 대표작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연극으로 공연되었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를 살펴보자. 그의 출생지는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1854, 그는 작위까지 받은 의사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한 이후 유미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옷맵시와 말솜씨로 유명했다. 빅토리아 말기 칙칙한 검은색 양복을 입던 시대에 화려한 색깔의 옷과 벨벳 재킷, 비단 양말을 착용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사회적 비난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옷차림만큼 말솜씨도 화려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1882년 유미주의 강연을 위해서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세관에 신고할 것이라고는 내 천재성 밖에 없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말년의 삶은 불행했다. 그는 동성애 때문에 재판을 받았으며 감옥살이를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2년간의 노역 끝에 영국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파리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가다가 쓸쓸하게 자신의 생명을 다했다. 그의 나이 46세였다.

 

  단편과 희곡 몇 편으로 오스카 와일드를 이야기할 수는 없겠다. 입문을 했으니 이제 몇 권의 책을 더 읽어보려고 한다. 그의 삶이 짧아 읽어야 할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