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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치는 인류_하워드 민즈_220515

필85 2022. 5. 15. 23:02

https://youtu.be/9s6CaiH-7yg

 

물은 질병이나 신체의 약함을 모두 받아들이며, 우리가 꿈꿀 수 있도록 자유를 허락한다. 수영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하워드 민즈)

 

저는 물속에 있을 때 제가 가진 신체적인 핸디캡을 잊어버립니다. 저는 수영복, 수경, 수모에서 빈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물이란 매질은 허영이라는 메이커를 쓸모없게 만듭니다. 젊은이는 힘차게, 중년은 노련하게, 늙은이는 조화롭게 물과 어울리는 모습에서 나이로 인한 차별은 물에서 느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물은 안식과 자유, 평등의 다른 이름입니다.

 

  수영인에게 최고의 자긍심을 가지게 한 격언은 플라톤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인간은 쓰고 읽고 헤엄칠 줄 알아야 비로소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플라톤의 격언을 응용하여 저 인간은 헤엄도 못 치고 읽지도 못해라는 말을 생활에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만 수영이 덕목이 되고 문화생활의 중심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훨씬 이전부터 그랬습니다. 1933년 탐험가 라즐로 알마시는 이집트 남부 사막의 어느 동굴에서 뜻밖의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헤엄치는 사람들의 동굴(Cave of the Swimmers)’에서 발견된 벽화는 개헤엄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발을 모으고 팔을 쭉 뻗어 여유롭게 헤엄치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동굴 속 그림은 8천 년 전의 벽화라고 합니다. 지금은 사막이지만 당시에는 물이 풍부했다고 합니다.

 

고대에 꽃피운 수영과 목욕 문화는 로마로부터 대륙으로, 영국으로 펴져 갔지만 중세시대에 암흑기를 맞이했습니다.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고 나서부터 물은 두려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물은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마녀로 지목된 인물은 연못에 던져졌고 수면으로 떠오르면 죄가 있다고 판결하여 처형되었습니다. 그런데 물에 빠진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든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저자는 근대에 들어와서 수영이 부활하게 된 데는 세 인물의 공이 크다고 합니다. 벤자민 프랭클린, 리처드 러셀, 그리고 바이런 경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프랭클린은 템스 강에서 맨몸으로 4.8km를 헤엄쳤습니다. 1749, 필라델피아에서 교육과 관련된 제안을 할 때 수영 연습을 강조하였으며 수영을 배우는 방법과 이유에 대한 프랭클린의 의견은 적십자에서 제공하는 수중안전 입문교육의 토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리처드 러셀의 공헌은 수영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으로 사람들을 해변으로 향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1750, 63세의 러셀은 <분비기관 질병 등의 치료에 있어서 해수 사용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수영을 향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부자들은 해변에 리조트 시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런 경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수영의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18185월 헬레스폰트 지역(터키의 해협, 현재 이름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오직 평형으로 1시간 10분 동안 헤엄쳐 세상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낭만파 시인이며 유럽의 유명 인사였던 바이런은 자신의 수영실력을 뽐내며 여기저기서 기발한 방식으로 수영 실력을 겨루었고 그의 행동은 수영인들을 자극시켰고 세상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중세를 지나면서 수영은 다시 황금기를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영국해협을 건너는 도전이 계속되었고 도전은 뉴스가 되고 전설이 되었습니다. 1921년에 이르러서야 물놀이 옷 Bathing Suit’ 대신에 수영복 Swimming Suit’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수영이 단순히 물에 몸을 담그고 씻는 행위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닌 활동적인 스포츠라는 개념을 수영복이라는 명칭으로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수영의 역사 중 재미난 것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19세기 중반, 런던에서는 밧줄로 초보자의 허리를 묶어서 수영을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캡틴 스티븐스가 출간한 수영 교본의 표지에서 교수가 한 쪽 팔로 기둥을 잡고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 밧줄에 묶인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런던에서는 흔한 일이었고 훈련 효과도 좋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풍습은 수영마차입니다. 1770년대 러셀의 해수 치료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해변으로 몰렸지만 여성은 바다로 선뜻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말이 끄는 차량이 등장했습니다. 마차가 바다로 들어가면 안에 있던 여성은 문을 열고 사다리를 타고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마차 주변에 가림 막을 펼쳐서 여성들의 신체가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수영을 즐기면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워싱턴> 매거진 시니어 에디터인 하워드 민즈는 이 책에서 고대부터 현재까지 수영의 역사, 수영인의 도전과 기록, 수영복에 관한 에피소드를 이어갔지만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바로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수영에 관한 것입니다.

 

저자는 기록은 깨지고 장벽은 무너지며, 패러다임은 변화한다. 매튜 웹이 최초로 영국해협을 횡단(1875)하고 143년이 흐르는 동안 1,800명 이상이 영국해협을 횡단했고 그 중 3분의 1이상이 여성이었다.’고 말합니다. 백인 귀족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수영 초기 역사에서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한 여성은 끊이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아네트 캘러만을 소개하겠습니다. 19077월 보스턴 리비어 해변에서 몸에 꼭 끼는 판탈롱을 입은 여성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체포 직전, 캘러만은 빨래 줄에 널어놓은 옷보다 더 많이 입으면 헤엄칠 수 없습니다.’ 라고 항의했습니다. 그녀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판사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다음부터 물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망토를 걸쳐야 함!’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관한 이야기도 수영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1920년대,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수영장을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수영장은 인종차별의 격전지가 되어버렸습니다. 1949, 수영장에 입장하려던 50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200명의 백인에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8, 열다섯 살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년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수영장에서 공격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통계를 인용하였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익사 사망률은 백인이나 히스패닉계 미국인보다 40%나 더 높습니다. 수영장에서 빠져 죽은 5세에서 14세 어린이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비율은 백인보다 세 배 높다고 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수영장 안에서 안전요원으로 근무했을 때에도 수영장 바깥에서 출입을 거부당하면서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나라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과 보육시설 아동, 어려운 가정형편에 놓인 청소년, 저소득층 시민들에게 수영장은 아직 사치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요? 수영복, 수영모, 수경만 있으면 편안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기본적인 영법이라도 익혀서 물로 인한 사고는 당하지 않게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책의 뒷부분에는 저자의 수영 경험이 실렸습니다. 저자는 물가에 악어만 없다면, 상어가 숨죽이고 있지만 않다면 수영장, 바다, , 호수, 연못, 세상 어디에서든 수영을 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세계 이곳저곳에서 수영을 하고 싶습니다.

 

수영은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