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회원들 사이에 아우성이 일어났습니다. 5월 독서토론회 발표자인 저는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자고 했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회원 몇 명은 한 달 내내 이 책을 잡고 있었다고 불평을 쏟았습니다. 해설과 주석을 빼면 100쪽 정도의 문고판이었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발표에 앞서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정신과 물질입니다. 정신은 논의에서 제외하고 물질만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어떤 물질(또는 재물)을 소유하고 있고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가, 에 따라 삶의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제가 가지고 있을 때는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남들이 즐기는 것을 내가 소유하지 못했을 때 저는 시기심과 체념,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게 닥친 고통과 슬픔의 원인을 찾다 보면 불평등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GDP로 대변되는 경제적 성과는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소득불평등 지수, 상대적 빈곤률 등 그 외 삶의 지표는 악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자살률은 천장에 닿았습니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되어버린 불평등을 깊이 있게 다루는 전문가가 항상 언급하는 이론이 바로 <인간 불평등 기원론>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대하여, 내 삶의 행복과 불행에 대하여 접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책을 선택하고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토론회 도서로 선정하고 회원들에게 읽기를 권했습니다.
회원들의 또 다른 불만은 ‘책을 읽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루소의 글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는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라는 문장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저는 루소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낸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장만 이해하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 속 모든 문장의 의미를 하나하나 파악할 필요는 없습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만 파악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저와 다른 주제 문장을 찾아내어도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자신의 독서력만큼 이해하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책이 어렵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읽으십시오.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읽는 저만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저는 각주를 무시하고 읽지 않습니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주를 달기도 하지만 자신이 많이 안다고 자랑하기 위해 또는 다양하게 문헌을 찾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첨부한 것도 많습니다. 본문보다 글자 크기가 작은 각주를 읽지 않아도 맥락을 이해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두 번째, 이해하지 못한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지 않습니다. 그냥 넘어갑니다. 독서는 영어 독해 시험을 치르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제게 와 닿는 문장, 저자의 생각을 잘 표현한 문장은 밑줄을 그어두고 책을 읽고 난 후 노트에 옮겨 적습니다. 노트만 보면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은 독자들의 수만큼 다양하게 해석되고 이해됩니다. 마지막으로 독서회원들과 토론하면서 책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토론 기회가 없다면 인터넷 검색으로 몇 개의 글을 찾아 읽어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맞춰보면 끝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책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책 1부에서 루소는 원시시대의 인간은 선악 구별이 없고 싸움과 교제도 없었으며 ‘자연이 명령한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간의 흐를수록 인간의 특징이 드러나면서 다양한 생물체 중 인간이 최고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루소가 말한 인간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책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인간의 특징들을 모아보면, 안전 욕구, 연민, 이성, 발전 욕구, 인정 욕망으로 파악됩니다. 두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발전 욕구는 발전 가능성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단순한 외침’에서 언어로 발전시킨 것, 그리고 우연히 발견된 식물에서 농사로 발전시킨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인정 욕망이란 타인이나 자신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를 말합니다.
저는 인간의 특징 중 안락과 자기 보존에 관심을 가지는 ‘안전 욕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을 위해 인간은 몇 명씩 모여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최초의 변화가 나타난 것은 오두막에 벽을 바르고 공동의 거처에서 가족생활을 시작한 때라고 루소는 말합니다. 인간은 나무 아래 모여 노래와 춤, 이야기를 하면서 타인을 칭찬하고 자신도 존경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선호와 허영심, 경멸, 수치심이 생기면서 불평등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단계가 미개인 사회의 마지막 단계라고 합니다.
인간이 미개인에서 사회인으로 변하게 된 것은 야금술과 농업이 발달하면서부터입니다. 토지의 경작으로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 두 사람 몫을 차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유’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습니다. 소유한 자는 규칙을 정하기 시작했고 소유하지 못한 자는 중재자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법률과 사회가 구성되었고 이로 인해 불평등은 고착화되었습니다. 루소가 비유하듯이 ‘누구나 자신의 자유를 확보할 심산으로 자신의 쇠사슬을 향해 달려’간 것입니다.
루소의 결론을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자연의 품속에서 생존했던 미개인은 평등한 생활을 누렸으나, 안전 욕구로 시작한 인간의 모임에서 인정 욕구가 나타나고 철의 발견과 경작의 발달로 노동이 필요하게 되면서 소유의 개념이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 이후, 가진 자들 주도로 법률과 사회를 구성하면서 불평등이 안정화되고 고착화되었습니다.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을 통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산업화 이후 물질을 소유하기 위한 개인 간, 국가 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재물을 가지는 기술, 재테크는 허울 좋은 이름입니다. 한국 사회의 경쟁은 무한 가속되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줄여 보겠다고 만든 법률과 제도는 차이를 더 벌렸습니다.
루소의 해결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은 평등하였다고 합니다. 불평등의 원인은 ‘소유’라고 보았으며 법률과 사회, 계약을 만들어 불평등을 정착시켰습니다. 루소의 주장은 자연으로 돌아가라, 계약을 취소하라, 입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인간의 특징 중, 안전에 대한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불평등의 기원을 찾았습니다.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 그리고 당신 삶이, 나의 삶이 가치 있다고 인정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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