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면 세상이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하고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한빛미디어 이사회 박태웅 의장은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가 있나? 일단 책 제목이 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책은 2021.8.1.일 초판 발행되었으며 그해 10월에 12쇄를 찍었습니다.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 한 명이 <눈 떠보니 선진국>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후보자는 ‘이 책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던져주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눈을 떠 보니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이 문장을 보고, 제가 떠 올린 첫 번째 생각은 ‘우리가 선진국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였습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의 저자는 BTS의 빌보드 차트 석권,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 타 선진국과 비교해 훨씬 적은 코로나 사망자 수,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마지막으로 ‘GDP 세계 9위’를 그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저자는 선진국이 된 후,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와 해법을 제시합니다. 저자가 가장 먼저 제안하는 것은 ‘정의(定義)하는 사회’입니다. 저자는 ‘미친 속도로 선진국을 베낀 최고의 후발 추격국’은 수십 년간 ’어떻게‘를 외쳐온 끝에 ’왜‘와 ’무엇’을 묻는 법을 잃어버렸다, 고 합니다. ’왜‘와 ’무엇‘을 말할 수 있어야 문제에 대하여 정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베끼기에 급급했습니다. 지난 정부 초기에 화두가 되었던 ’제4차 산업혁명‘이야기입니다. 위원회를 꾸리고 정책을 쏟아낸 4차 산업혁명 신드롬의 발단은 독일의 <산업 4.0> 백서였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간과했던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독일에서는 <산업 4.0>과 함께 <노동 4.0>이라는 백서가 발간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노동의 미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노동 문제는 뒷전에 밀리고 4차 산업이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만 논의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산업 4.0> 백서 전에 발간된 <녹서(綠書)> 이야기입니다. 유럽연합은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사회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녹서>라는 책을 발간합니다. 독일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 올 산업과 노동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기 전에, 질문을 만들고 정의(定義)하였습니다.
“50대에 다시 한번 대학을 다니거나 새로운 직업을 가지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될 것인가? 기계들은 우리의 직장을 앗아갈 것인가, 아니면 기계가 다양한 개선을 가능케 하고 생산력을 높이게 되어 새로운 직군을 창출하게 될 것인가?”
독일의 연방노동사회부 장관 ‘안드레아 날레스’는 위와 같은 질문을 <녹서>의 형태로 던졌으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밝혔습니다. 독일 사회는 <녹서>를 통하여 질문을 하고 사회적 합의를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순서로 백서를 통해 대답을 내놓았고 정부의 산업, 노동정책은 추진력을 더하였습니다.
저자는 선진국이 된 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를 몇 가지 더 제시합니다. 데이터 중심사회, 성장 지표의 개편, 협상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음은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숫자가 말을 할 수 있을 때 사람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지표를 바꿔야 한다. 서른이 넘었으면 키 재는 건 이제 그만!”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협상과 타협의 태도가 몸에 밴 시민이 대한민국을 가장 살기 좋은 선진국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IT 전문가 답게 AI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자는 이 글에서 2019년 미국 P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In the age of AI>를 소개합니다.
유튜브에서 2시간 동안 영상을 본 저의 느낌은 ’기대감‘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기대감은 AI가 인류의 기후 위기나 식량문제, 불평등 문제의 해법을 내놓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2차전, ’37번 수‘처럼 말이죠. 전문가들은 ’37번 수‘를 ’인간의 창의성을 뛰어넘은 수‘, ’이상하게 어색하지만, 균형을 맞춘 수‘라는 평가를 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신의 한 수‘를 AI가 둘지 기대해 봅니다.
두 번째는 두려움입니다. 제가 두려움을 가지는 이유는 AI가 감시와 통제의 완벽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의 첫 번째 이야기 제목은 ’중국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China has a plan).‘입니다. 2017년, 시진핑 주석이 ’AI 분야에서 2025년까지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발표한 이후 2년 만에 17개 정도의 중국 유니콘 기업(10억 달러 이상의 회사가치 평가 기업)이 탄생했습니다. 상해 거리의 수많은 CCTV는 안면 인식기술을 이용해 시민들을 보상하고 처벌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이 기술은 결코 대중의 편에 서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눈 떠보니 선진국’, 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자랑스러운 것도 많지만 말하기 부끄러운 것도 있습니다. 부모의 신분, 장애, 학벌의 차이와 차별이 만들어낸 과거 속에 갇혀 기회조차 잡지 못하게 된 불평등 국가, 현재가 두려워 목숨마저 버리는 자살률 최고 국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결혼과 출산마저 사치가 되어버린 인구 소멸 국가라는 불명예에 눈 감을 수만은 없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한 것은 선진국이 된 후, 풀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보입니다. 눈을 더 크게 떠야 선진국이 됩니다.
*** 눈 떠보니 선진국_박태웅_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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