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수영장에서 오늘 하루치의 연습량을 채우며 내 인생의 할당량을 생각한다

필85 2022. 10. 3. 13:36

흐린 날씨 때문인지 몸이 찌뿌둥하다. 오전 10시, 나는 수영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오늘 가지 못하면 이번 주에는 두 번 밖에 가지 못한다. 1주에 3회는 수영을 해야 지금 실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셈법이다. 공휴일(10월 3일)인 오늘은 자유수영이다.

 

강습을 받는 날은 강사가 시키는 대로 풀장을 뺑뺑 돌고 수업 후에 혼자 IM 300m를 더 한다. 이런 날은 기분 좋은 피로감에 잠자리도 편하다. 자유수영은 나 만의 루틴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누가 시키지 않기 때문에 순전히 내 의지로목표 연습량을 채워야 한다.

 

나는 전반부에는 각 영법으로 25미터 레인 다섯 바퀴를 돈다. 쉬지 않고 돈다. 얼마 전만 해도 평영의 경우, 중간에 휴식 없이 도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이제 큰 무리없이 돌고 있다. 접영의 경우는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한 팔 접영을 하고, 지나가고 나면 양팔 접영을 하면서 다섯 바퀴를 채운다. 후반부는 각 영법의 기초를 다지고 기술을 익히는 연습을 한다. 역시 영법 별로 다섯 바퀴를 돈다. 이때는 한 바퀴씩 끊어서 한다. 영법별 발차기, 한 팔 자유형과 배영 등 다양한 연습을 시도한다. 모두 합치면 2km를 수영하게 되고 마무리로 1~200m를 추가한다. 1시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된다.

 

오늘은 중간에 몸이 무거워져서 이정도하고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단지 힘들다는 이유로 오늘의 연습량을 못 채우게 되면 앞으로 나의 수영실력은 점점 수준이 낮아질 것이다. 몇 번만 반복하다 보면 수영 자체도 귀찮아져서 발길을 끊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내게 할당된 삶의 분량을 채우는 것, 나의 신체와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몫을 부끄럽지 않게 해내는 것, 그게 내 삶의 이유일 것이다. 내가 중요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주위 사람에게 조그마한 점이라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삶을 마감하면 더 좋을 것이다.

 

수영 연습량 채우는 이야기 하면서 '삶의 이유'까지 들먹거릴 필요가 있냐고 핀잔 줄 수도 있겠다. 내 삶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주 작고 하찮은 일 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첫 페이지부터 읽어야 한다. 띄엄띄엄 읽어도 책의 내용은 파악할 수 있지만 '읽었다'라고 말할 순 없다. 같은 나이를 먹어도 시간을 보낸 것과 내 삶의 할당량을 채운 것과는 다르다.

 

다시 배영 발차기를 한다. 허벅지 부터 출발한 뻐근함이 엉덩이 근육까지 뻗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