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두 편은 봐줘야 설 연휴가 지나가겠다. 딸에게 한 편 추천해 달라고 하니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를 권한다. 어젯밤에 친구들과 함께 랜선으로 같이 봤다고 한다. 자기는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둘이 앉았다.
1996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마틸다>는 2010년에 영국에서 뮤지컬로 공연되기 시작하였다. 그 인기가 우리나라에까지 미치면서 2018년에 시작한 서울 공연이 아직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영상을 찾아보니 <열린음악회>에서 한국 공연팀이 노래와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0년 뮤지컬을 시작할때 감독을 맡았던 '매튜 워처스'가 그대로 이 영화에서도 메가폰을 잡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임신을 부인하는 어머니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음에도 홈스쿨링이라는 이름으로 집에 잡아두는, 돈만 밝히는 아빠사이에 자란 마틸다, 장학사의 가정방문으로 드디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등교 첫날 마틸다의 학업 수준은 담임인 허니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한다. 마틸다는 집에서는 무관심을 받았지만, 펠프스 부인이 운영하는 이동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수학은 물론이고 문학까지 익혔다. 거기다 초능력까지 갖췄다.
마틸다는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상상도 하지 못할 난관에 부딪혔다. 학교의 모든 시스템을 좌지우지하고 아이를 벌레 보듯이 하는 트런치불 교장선생때문이다. 군복에 핸드마이크를 갖추고 오직 'Yes'만을 강요하는 트런치불은 전직 해머선수였다. 영화 중 가장 잔인한 장면은 복종하지 않는 어린이를 해머 던지듯이 날려버리는 씬이었다. 교장의 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마틸다는 'No'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대적한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복선이 보이기 시작하고 긴장이 고조된다. 결말까지 로알드 달의 의도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저자인 로알드 달의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야기는 살펴봤으니 이제 출연진을 보자. 마틸다 역을 맡은 '알리샤 위어'의 깜찍하고 야무진 연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내가 주목한 사람은 빌런 역할을 제대로 한 엠마 톰슨이다. 출연진을 알기전에는 갸날픈 여성이 교장역할을 맡았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그런 스타일의 배우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분장하는 시간만 세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그녀의 헌신을 인정해야겠다. 메이킹 필름에서 엠마 톰슨은 육체적으로도 힘든 연기였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인정사정없이 아이를 괴롭히는 트런치불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인물이다.
뮤지컬 영화인 만큼 노래를 빼 놓을 수 없다. 딸이 <스쿨송>을 듣는 동안 영어 가사와 해석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스쿨송>은 일종의 알파벳송이다. 묘하게 해석과 잘 들어맞다. 번역자의 풍부한 어휘력을 즐길 수 있다. <어른이 되면>과 <리볼팅 칠드런>도 인상적이다. 마지막 곡인 <리볼팅 칠드런>의 휘몰아치는 리듬과 아이들의 군무는 단연 영화의 압권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주제는 '스토리'다. 마틸다는 버스에서 생활하면서 이동도서관을 운영하는 펠프스 부인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고 있다. 만날 때 마다 이야기는 진전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음...저도 몰라요. 다음에 이야기가 떠오르면 만날 때 들려줄께요', 이런 식이다. 마틸다의 이야기는 곡예사와 마술사의 사랑이야기이다. 곡예사는 천막 높은 공간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마술사는 상어밥이 되기 전 몸에 묶인 쇠사슬을 끊고 탈출하는 퍼포먼스를 한다.곡예사 언니의 질투와 욕심때문에 곡예사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고 마술사는 사라진다. 남은 아이는...
마틸다가 꾸며낸 '스토리'는 영화 속 주인공의 삶과 연결된다. 허니 선생님 이야기다. 마틸다에게 헌신적인 가르침과 사랑을 베푸는 선생님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헛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마틸다는 그녀에게 삶의 스토리를 고쳐쓰라고 한다. 부당한 것에 대적하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람은 책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지만 삶은 책이 아니다. 이미 씌여진 글은 삶이 아니다.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내일은 다른 이야기를 들여줄 수 있는 것'이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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