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시들은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감동을 주진 않는다."
"그의 글들의 상당수는 깊이가 부족하다.(중략) 그가 치열하게 싸우지 않아서 그렇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또 시인이지만,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시집을 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책에 대한 평가는 매섭다. '읽을 만하다'고 평가받는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문학인의 이름과 책 제목을 이렇게 까놓고 재단해도 되는 것인가, 독자 입장에서 걱정이 앞선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비평가랍시고 주례 비평만 하는 글만 읽다보니 제대로 된 비평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김현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박태순이 내 글을 괴팍하다고 했다고 한다. 괴팍하다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은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
이 책은 김현 선생이 1986년부터 4년 동안 기록한 독서일기다. 선생은 이 책을 집필한 후 이듬 해 1990년에 4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책은 유고집이다. 선생은 소설 동인지 <산문시대>, 시 전문지 <사계>를 창간하였으며 불문학자로서, 문학비평가로서 여러 권의 연구서와 비평집을 출간하였다.
책 내용은 그 당시 출간된 책에 대한 비평이 중심이지만 저자의 신변잡기와 문학에 대한 단상, 작품 메모들이 섞여 있어 풍부한 생각거리를 독자에게 준다. 다음은 문학작품을 왜 읽는지, 사유의 주체는 누구인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중략) 무엇을 왜 욕망하는 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 앎에 대한 욕망은 남의 글을 읽게 만든다. 남의 이야기나 감정 토로는 하나의 전범으로 그에게 작용하여 그는 거기에 저항하거나 순응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내가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내 육체가 사유의 주체라는 생각에 더 깊이 사로잡힌다...내 육체의 슬픔과 괴로움, 즐거움과 환희를 이해해야 나는 내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
책에 대한 이야기 중에는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이 책을 프랑스에서 읽었을 때는 비-선동적으로 느꼈는데, 한국에서 읽을때는 선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에 대하여 '나는 책읽기가 단순한 활자 읽기가 아니라 그 책이 던져져 있는 상황 읽기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프랑스에서는 책의 내용이 극복된 상황이었지만 1980년대 말 한국에서는 심각하게 검토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던져진 상황을 읽는다,는 말은 내게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다. 몇 년 전 내가 처한 상황과 지금 나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책을 읽더라도 다른 의미를 내게 준다는 것이다. 고전 또는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책을 시간을 달리하여 읽어야 하는 이유다.
한편,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칭찬한 책을 몇 권 구입해서 읽을 작정이지만 좋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자의 지식, 나이, 감정을 포함한 상황 또는 성향이 나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책은 다르게 읽혀질 것이고 완전히 다른 느낌을 내게 줄 것이다.
책에 대한 책을 읽고 나는 이런 질문을 해본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저자는 무엇을 욕망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남의 글을 읽는다고 하였다. 저자는 어느날 일기장에 '사르트르에게 있어 인간을 움직이는 기본동력은 욕망이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어느날은 '나는 내 욕망의 총화이다.'라고 단언했다.
나의 답은 이것이다. 책은 나의 욕망이다. 이것이 나를 움직이는 기본 동력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책읽기를 통해서 나의 상황을 읽기를 원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상황, 즉 나의 생각, 심리, 태도를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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