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잡은 이유는 내가 읽었던 책 속에서 조르주 페렉의 생각이나 그의 대표작 <사물들>에 대한 언급이 많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들이 이 책을 언급한 이유가 있었다. 소재와 이야기 서술방식이 이제까지 읽어왔던 소설과는 다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분량도 적다. 사회심리 설문조사원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실비와 제롬의 이야기다. 그들은 이제 막 사회생활에 발을 들였으며 풍족한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논쟁하고, 반정부 시위에도 참여하지만 부富에 대한 욕망은 늘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들이 부자일 줄 안다고 믿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바라보고, 웃을 줄 알았을 것이다. (중략) 반대로, 상황은 쉽지 않았다. 가난하지만 않을 뿐 부를 갈망하는 가진 것 없는 젊은 커플에게 이보다 더 곤란한 상황은 없을 듯 했다. 그들은 수준에 맞는 정도로만 갖고 있었다."
'삶을 사랑하기에 앞서 부를 사랑'했던 그들은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물들에 둘러싸여, 멋지고 단순하며 감미롭게 빛나는 사물들 사이에서 삶이 언제나 조화롭게 흘러가리라 생각'했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큰 돈을 벌지 못한 실비와 제롬은 파리에서의 제자리 걸음만하는 삶을 뒤로하고 도시를 탈출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튀니지의 어느 시골도시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꿈꾸었으나 몇 개 월 동안 살아보고 그만두었다. 도시로 돌아온 그들에게 '무엇인가, 아주 천천히 파고드는 조용한 비극과 같은 것이 그들의 느려진 삶가운데 자리잡았다.'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조르주 페렉은 이 소설로 성공을 거두고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물질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실비와 제롬이 행복하고자 하는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벗어날 수 없는 사슬에 걸려'들었다고 하면서 '행복은 계속해서 쌓아 올려야 하는 무엇이 되고 만 것이지요. 우리는 중간에 행복하기를 멈출 수 없게되고 말았다'고 하였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이제까지의 행복에 대한 마음 문법, 즉 마음을 중심으로 설명해왔던 행복을 사물 관계로 설명하려 든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면을 보자면, 소설 속에는 등장인물의 대화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화체는 화자의 심리적인 면을 이해하려는 독자의 노력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대화체와 감정묘사를 없애고 사물에 대한 설명과 제3자적 입장에서 주인공들이 사물을 대하는 태도,행동묘사를 통해서 행복을 심리적인 면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의 의도를 원천 차단시켜 버렸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행복은 사물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물질의 풍요가 인간에게 주는 편리함에 도취된 1960년대 파리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사물이 주는 유익과 유희에 도취된 청춘들이라면 더 그럴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의 나는? 이 문제의 해답에 대한 힌트가 책 시작 전 인용된 맬컴 로리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명이 우리에게 제공한 혜택은 셀 수 없고, 과학의 발명과 발견이 가져온 생산력으로 얻게 될 온갖 풍요로움은 비할 데 없다.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롭고, 더 완벽하고자 인간이 만든 경이로운 창작품들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어느때보다 수정처럼 맑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새로운 삶이라는 샘은 고통스럽고 비루한 노동에 시달리며 이를 좇는 사람들의 목마른 입술에는 여전히 아득히 멀다."
과학발전으로 상상이상의 풍요로운 사물들이 쏟아지는 지금도 물질은, 행복은 노동에 시달리는 모든 노동자의 입술을 적셔주지는 못한다. 지금의 나는 불행의 무한궤도를 돌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궤도를 이탈하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을 좇지 않는 것이다. 삶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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