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고골 단편집_니콜라이 고골_191223

필85 2019. 12. 23. 23:29
"하기야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간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에도 무언가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 이와 비슷한 사건은 일어난다. 드물지만 일어나는 법이다."(단편 <코>의 마지막 부분)

이 책에는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네 작품이 실렸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 보니 8등관 코발료프의 코가 없어졌다. 곤란에 빠진 주인공은 광고를 내기 위해 신문사를 찾아가고 경찰서장에게 자신의 코를 수배해달라고 부탁도 해 보았다. 그러던 중 5등관으로서 행세하며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말썽을 피우던 코가 제자리에 돌아온다는 것이 단편 <코>의 이야기다.

가난한 삶을 이어가던 하급공무원 아키키예비치가 전 재산을 털어 겨울외투를 마련했지만 강도를 만나 옷을 빼앗기게 된다. 묵숨보다 소중하게 간직해 온 외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중요한 인사'라고 불리어지는 누군가를 찾아갔으나 그자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한다.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생명을 다한다. 아키키예비치는 유령의 모습으로 도시에 나타나서 일을 벌인다. 이것이 단편 <외투>의 줄거리다.

<광인일기>는 국장의 연필을 깍아주거나 사무실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주인공이 스페인 왕이 된다는 생각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오늘은 경축해야 할 날이다! 스페인에는 왕이 있다. 그가 발견되었다. 그 왕은 바로 나다. 바로 오늘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사실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지막 단편인 <감찰관>은 5막으로 된 희극이다. 어느 소도시에 정부에서 파견된 감찰관이 암행을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유지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한다. 누군가가 낯선 관리가 여관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군수가 달려가서 그를 극진하게 접대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페테부르크에서 온 그 젊은이는 도박을 좋아하고 며칠째 무전취식하고 있는 관리였다. 군수, 교육감, 재판소장, 우체국장의 호들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골의 단편소설은 1830년대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다. <코>와 <광인일기>는 신경학 전문의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떠올리게 한다. 잃어버린 코가 시내를 돌아다닌다거나 자신이 스페인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정도의 '기이함'에 불과하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은 우리세계에 언제든지 일어난다. 엉뚱하고 기묘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거나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한다.

<외투>라는 작품은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저자의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여겨지는 글에서 굶주린 젊은이는 '나는 온 나라에서도 비길데 없는 머리와 하역 인부라도 때려 눕히고 콩가루로 만들 만한 두 주먹을 지니고 있다(신이여 용서하소서). 그런데도 크리스티아나 도시 한복판에서 인간의 모습을 잃을 정도로 굶주리고 있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의 질서와 순서가 그런 것인가?'라고 분노한다. <외투>속의 젊은이는 추위와 모멸감속에서 몸을 떨다가 숨이 꺼졌다. 가진 것 없는 자에게 세상의 질서란 그런 것인가?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은 겨울에 어울린다. 러시아 작가의 소설을 더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