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민음사)은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민음사)을 읽고 구입한 책입니다. <행복한 왕자>, <살로메>, <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이라는 짧은 작품을 읽는 동안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소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입니다.
소설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가 완성되는 순간부터 시작합니다. 로마 황제가 사랑했던 미소넌 ‘안티누스’, 아프로디테의 연인이었던 ‘아도니스’와 견줄만한 매력적인 청년, 도리안 그레이를 그린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도리언 그레이는 완성된 초상화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의 볼은 기쁨으로 반짝였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진가를 인식한 듯 눈동자에 즐거운 기색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경이에 사로잡혔습니다.
도리언 그레이를 모델로 세운 화가는 바질 홀워드입니다. 바질은 자신의 모든 재능과 영혼을 담아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사실 이 그림에는 보통의 ‘화가와 모델’ 이상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바질 홀워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리언의 매력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예술이 있음을.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스타일이 있음을 알려줬어. 나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지”
한편, 도리언은 매혹적인 젊음을 발산하는 ‘초상화 속 도리언 그레이’에게 질투심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잃어버릴 자신의 아름다움을 초상화는 그대로 간직할 것이라는 생각에 도리언은 괴로워합니다. ‘바뀌는 건 초상화고 나는 항상 지금 같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리언은 ‘자신의 아름다움은 쇠락하지 않는 대신 캔버스 위의 얼굴이 그의 열정과 죄악의 무게를 감내하기를’ 소망합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소망대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도리언은 도시의 변두리, 한적한 극장에서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도리언은 줄리엣을 연기한 시빌 베인의 정열적인 연기를 보고 단숨에 사랑에 빠집니다. 시빌 베인도 도리언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연극을 관람하러 간 도리언은 시빌의 연기를 보고 실망합니다. 시빌은 자신의 모든 열정이 도리언을 향하고 있어 무대 위에서의 연기는 허무하고 기만적인 행위로 여겨졌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시빌은 형편없는 연기를 보였고 도리언은 시빌에게 실망하여 결별을 선언합니다. 시빌의 애원과 흐느낌을 뒤로 하고 도리언은 매정하게 돌아섰습니다.
그날 밤, 초상화가 달라졌음을 도리언은 알아차렸습니다. 덧칠을 한 것도 아닌데 초상화속 도리언은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음 날, 시빌 베인은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시빌의 죽음과 함께 신체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도리언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상화는 점점 추악한 몰골로 변했습니다. 도리언은 옥탑 방에 자신의 초상화를 숨겼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초상화를 그린 바질 홀워드가 도리언을 찾아옵니다. 바질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 즉 도리언이 끔찍한 짓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바질은 ‘죄악이란 저지르는 사람의 얼굴에 흔적을 남기는 법’이라고 하면서 그의 매력적인 얼굴을 다시 쳐다봅니다. 도리언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바질에게 숨겨두었던 초상화를 보여주기로 합니다. 그리고...(소설의 뒷부분은 남겨두겠습니다.)
이 책은 세 가지 방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동성애적 측면, 초상화의 의미,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가 밝힌 소설의 교훈입니다.
첫 번째는 동성애적 측면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연인이었던 알프리드 더글러스의 아버지는 법정에서 그를 동성애자라고 비난하면서 이 소설을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죄를 선고받고 열악한 교도소에서 몸과 마음이 망가져 석방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사라졌고 그가 집필한 연극도 상영되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가족이 모두 떠나고 파리의 싸구려 호텔에서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1900년 11월 30일이었습니다.
동성애 자체가 비난을 넘어서 불법이었던 시대, 오스카 와일드는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서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술가는 윤리에 동조하지 않는다. 예술가가 윤리에 동조한다면 그것은 스타일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며, 용서할 수 없다.’ 위대한 예술가인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그 시선이 비록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하더라도.
두 번째 제가 골똘히 생각한 것은 초상화의 의미입니다. 죄악이 그 사람의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고 바질이 말했습니다. 도리언은 자신에게 쌓인 악행을 자신의 얼굴 대신 초상화가 받아내도록 했습니다. 자신은 순수한 아름다움과 매력을 소유하면서 말이죠.
저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처럼 저의 못된 행동을 받아주는 ‘그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저의 모든 시간이 제 얼굴과 태도, 몸짓에 축적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가끔 저는 제 얼굴을 볼 때 그 생각을 합니다. 편안함에 이른(至安) 얼굴인지.
마지막은 오스카 와일드가 밝힌 이 소설의 교훈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소설이 발표된 후 한 일간지에서 ‘이 소설은 작품 전반에 부패한 도덕과 영혼에서 풍기는 악취가 가득해서 아주 유독’하다고 혹평하였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반론을 답장형태로 써서 보냈습니다. 그는 ‘이 소설의 진정한 교훈은, 무엇이든 너무 지나치면 과도하게 억제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도리언의 친구인 헨리 경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헨리 경은 ‘살아요! 그레이씨 안에 있는 경이로운 삶을 살아요! 어떤 것도 놓치지 말아요. 항상 새로운 감각을 찾아내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요’라고 충고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을 찾아내는 삶에 대하여 찬양하면서 극단으로 몰고 갔을 때 어떤 결과에 이르는지, 유미주의적 관점으로 그려냈습니다.
이 소설의 표지 그림은 정중원 화가가 이 책을 읽고 도리어 그레이라고 추정될 수 있는 인물을 그렸습니다. 실제로는 오스카 와일드의 연인이었던 알프레드 더글러스를 화폭에 담았다고 합니다. 표지를 둘러싼 그림을 평면 그림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와 시선을 마주치기만 해도 깊게 빨려 들 것 같은 눈, 매끈하면서 탄력 있는 볼, 금방이라도 내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갈 운명의 한마디를 내뱉을 것 같은 살짝 열린 입술을 봅니다.
새로운 생각을 솟아나게 하는 그림을 보거나 글을 읽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_오스카 와일드_202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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