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어릴 때 자신을 버린 태수미 대표와 어떻게 갈등을 해소할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엄마, 아빠가 되어버린 현이와 영주가 그들의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할지, 또 아이를 낳을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몇 년 동안 꼴찌를 기록한 드림즈 구단을 어떻게 우승으로 이끌지, 구단을 해체하겠다는 모기업의 음모에 단장은 어떤 지략을 펼칠지 기대했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극본 문지원), <우리들의 블루스>(극본 노희경), <스토브 리그>(극본 이신화)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기술>의 저자 존 가드너는 우리가 책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배운다고 하면서 구체적으로는 ‘갈등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우리는 어떤 가치를 긍정할 것이며 그에 따른 일반적인 도덕적 위험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고 주인공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배웠습니다. 이야기가 주는 힘은 컸습니다. 지어낸 이야기에 저는 설득당하고 감동받았습니다.
<소설의 기술>은 이런 이야기를 어떤 방법으로 쓸 수 있는지, 잘 쓰려면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존 가드너가 1982년 오토바이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 수업교재로 사용했던 내용을 집대성하였습니다. 책의 1부에서는 ‘문예 미학이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소설의 절차’, 즉 글쓰기에 필요한 테크닉과 디테일, 흔히 저지르는 실수에 대하여 자세히 짚어 줍니다. 스토리의 구성법, 플롯을 짜는 법, 캐릭터 만드는 법, 관점을 선택하는 법을 소설 속 문장을 예시로 들어가면서 보여줍니다. 책의 말미에는 연습문제까지 실렸습니다.
소설가 조경란은 추천사에서 ‘작가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고 실제로 작가가 되는 데 대하여 ‘진지하고 고집스럽게 풀어놓은 책’이라고 소개합니다. 조경란 작가가 문예창작 강의를 시작할 때, 맨 처음에 찾아 읽었던 책이라고 합니다. 영미권 작가나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사 중에서 이 책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문예 창작 분야에서 이 책이 차지하는 가치와 중요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가 소설이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을 소개하겠습니다. 그것은 ‘생생하고 연속적인 가상의 꿈’이라는 개념입니다. 작가는 극화된 사건을 만들어냄으로써 우리에게 상황, 배경, 캐릭터, 사건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하는 신호를 보낸다고 합니다.
생생한 장면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충분한 디테일을 제공해야 합니다. 추상적인 말을 사용하는 것, 관찰자적인 의식을 통해 이미지를 불필요하게 필터링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이런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녀는 알아챘다(She noticed.)’, ‘그녀는 보았다(She saw.)’와 같은 문장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대신 눈앞에 보이는 것을 직접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얼마 전 읽었던 <묘사의 힘>(샌드라 거스)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샌드라 거스는 ‘인물이 지금 슬프다고 ‘말하지’말고 한 쪽만 해진 초록색 2인용 소파를 독자의 눈앞에 생생히 ‘보여주라’, 당신의 작품 속 한 장면이 독자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지도 모른다.‘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기(Show, don’t tell)‘은 저에게도 중요한 글쓰기 법칙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메리 파이퍼)과 함께 구입했습니다. 두 권의 책은 제가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존 가드너는 저와 같은 작가 지망생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정통한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책들을 탐독해야 하며, 신중하게 글을 쓰되 꾸준히,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를 사려 깊게 평가하고 또 평가하면서 써야한다는 말이다. 콘서트 피아니스트와 마찬가지로, 작가에게는 연습이 곧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저는 이 글을 읽고 제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저는 많은 책을 읽고 꾸준히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지만 저의 글에 대한 평가가 부족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고 체계적으로 ‘연습’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더 생각해봐야하겠습니다.
또 하나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드너는 ‘소설을 분석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도 정말 잘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배우지 않고 잘 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저는 글 쓰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냥 열심히 글을 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써다보면 나만의 문장이 생길 줄 알았습니다.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배워야합니다. 갈 길이 멉니다.
이 책은 <소설의 기술>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저는 훨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자는 ‘모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읽힐 수도 있고, 혹은 그것을 읽는 사람이 죽으려는 마음을 품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한다.’고 충고하면서 ‘작가들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피해를 끼칠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해야만 하고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자는 예술은 힘이 세다고 확신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쁜 예술도 힘이 세다고 말했습니다.
어릴 때 자기를 버린 어머니와 어떻게 화해를 해야 하는지, 고등학생 엄마, 아빠, 그리고 그 주변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생각과 행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머리와 가슴 속에 가라앉아있는 생각과 감동을 글로 끄집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쓰기 공간에 존 가드너의 연습문제를 풀어볼 예정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설에서 시체가 발견되기 직전에 등장하는 구절을 써보라. 아마도 캐릭터가 자신이 발견하게 될 시체에 접근하는 모습, 혹은 그 장소, 아니면 그 둘 다를 묘사하게 될 것이다. 이 훈련의 목표는 독자를 이 구절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얼른 다음 장면을 보고 싶어 하도록 만드는 테크닉과 이 구절 자체가 지닌 흥미로 인해 그를 지금 이 구절에 붙들어놓는 테크닉을 동시에 익히는 것이다.“
존 가드너_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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