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知

한국인은 심리적으로 지금 사춘기다

필85 2022. 9. 18. 21:40

https://youtu.be/JIo0lizBUgY

 

니 내가 누군지 아니?’(주체성)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추가요!’(가족 확장성)

짬뽕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고, 여기 짬짜면 부탁해요!“(복합유연성)

 

심리학자 허태균 교수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인은 지금 심리적으로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질풍노도 시기의 한국인은 심리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저자는 주체성, 가족 확장성, 심정중심주의, 관계성, 복합유연성, 불확실성의 회피이렇게 여섯 가지를 제시합니다.

 

이런 특징은 일반적인 인간의 심리상태를 설명하는 이론이지만 유독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최근 100년 동안 우리가 겪었던 시련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인은 생존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되었고, 살아남은 자는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한국 문학과 한국 사람 생활의 특질이란 무엇인가?’ 국문학자 조윤제 선생님은 이 물음에 대하여 은근과 끈기라고 답하였습니다. ‘‘은근은 한국의 미요, ‘끈기는 한국의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은 제게 한국 사람의 특질을 묻는다면 생존과 성장이라고 하겠습니다. 버텨라, 그리고 살아남았다면 더 많이 소유하라. 이제 성장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기 위해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이 지금 필요한 이유입니다.

 

  저자가 한국인의 심리적 특징이라고 이야기한 여섯 가지를 대강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체성은 집단 내에서 자기가 주도권을 가지려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무시당하는 느낌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내가 한턱 쏠 게, 니 내가 누군지 아니, 라는 말은 영화에서만 대사로 듣는 말이 아닙니다. 두 번째, 자신이 속한 모든 사회조직을 가족으로 이해하는 가족 확장성도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모, 삼촌, 언니, 어머니는 집 밖에서 더 많이 듣습니다. 가족같이 모시겠다,는 구호나 간판은 또 얼마나 많은지.

 

세 번째, 한국인은 조직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하지만 일본의 집단주의와는 확실하게 다릅니다. 한국인은 집단주의보다는 관계주의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즉 조직 시스템 안에서 사적인 관계가 우선합니다. 후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승진하지 못한 선배가 사표를 쓰는 조직도 있습니다. 네 번째, 의사소통을 할 때 말이나 행동보다는 마음을 중시하고 심정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이를 심정중심주의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섯 번째 한국인은 포기를 싫어하고 선택을 회피하면서 모든 것을 두루두루 잘해야 한다고 믿는 복합유연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위험하고 불확실한 것은 회피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저는 저자가 말한 여섯 가지 특징을 단순화시켜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관계성과 유연성입니다. 관계성에서 주체성, 가족확장성, 심정중심주의가 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 내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중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직적 인간관계가 형성됩니다.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고 결정권을 가지려는 주체성을 내세웁니다.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가족을 들먹이며, 서로 말하지 않아도 심정으로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유연성입니다. 한국인은 법과 원칙의 적용에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서양에서는 일관된 행동양식을 추구하지만, 한국인은 자신이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달라도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대립하는 것들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위험하고 불확실한 상황은 회피합니다. 결국은 단기적이고 즉각적이면서 눈에 쉽게 띄고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는 것에 급급해지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심리적 특징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고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안성맞춤입니다. 이런 특성으로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발전을 이루어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 ‘무엇을?’이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 책과 함께 읽어 볼 만한 책을 소개합니다. 바로 <피로사회>(한병철 지음)<중독의 시대>(강수돌 외 지음)입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피로사회>는 성과주의의 환상, 즉 더 활동적으로 생산하면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개인은 고립되고 소외되면서 정신적인 질병을 앓게 되었다고 경고합니다.

 

<중독의 시대>에서 저자들은 대한민국은 사회 전체가 중독시스템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저자들은 중독의 원인을 '두려움'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느낌이나 욕구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내적인 자율성'이 없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으로 인해 중독이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중독 현상 중에서 한국 사회에 만연된 '일 중독'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제시합니다.

 

  이 책에서 소개된 저자의 전문가적 식견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바로 인문학에 대한 저자의 의견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인간의 본성과 경험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지식이 바로 철학과 심리학이고, 인간의 경험을 가장 효율적으로 창조하는 방법이 문학이라고 하면서 인문학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글을 맺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독서를 이어가고 때때로 글을 쓰는 것은 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대신해 줄 수도 없는.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지음. 2022.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