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있었던 일 중, 탑 2를 뽑아서 발표해 주세요"
모임을 주관하는 디렉터가 요구했다. 모임에는 드레스 코드도 있었다, 블랙 & 레드. 나는 검은색 양복과 코트를 갖춰 입었지만 빨간색은 맞출 길이 없었다. 소심하게 빨간 손수건만 챙겼다. 12월 첫째 토요일, 스무 명의 참석자들이 한껏 멋을 냈다. 베스트 드레서는 검은 양복에 진한 빨간색 양말을 착용한 남성이 차지했다.
디렉터의 요청으로 올 한 해를 돌아봤다. 내게 일어났던 일 중, 첫 번째 사건은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된 것이었다. 독후감은 이십 년 넘게 써왔지만 에세이라고 할 만한 글을 쓴 적은 없었다. 올해 4월에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 가입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책보다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나 경험, 나의 생각을 먼저 꺼냈다. 독후감과 신변잡기를 모아두었던 '다음 블로그'가 '티스토리'로 바뀌었다. 개편하는 시기에 맞춰 카테고리를 정리하고 더 많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와 티스토리의 장점은 내 글에 대한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읽는 사람의 반응은 아마추어에게는 큰 자극이면서 소소한 즐거움이다.
이제 재미를 붙였으니 조금 더 정진해야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나의 글을 독자들이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읽게 하는 것이다. 나의 글에 그만한 가치와 감동, 재미, 정보가 담겨야 한다. 내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3년 정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아니면 말고.
두 번째 일어난 일은 '일 년 동안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는 일 년 동안 변함없이 그대로다. 건강문제도 마찬가지다. 초음파, 내시경, 혈액검사를 정기적으로 받고 처방전에 따라 약을 복용하고 있다. 회식자리에 가서도 알코올 술은 마시지 않는다. 작년에 시작한 유튜브도 구독자가 크게 늘지 않았다. 구독자 수에 기대지 않고 꾸준히 동영상을 만들어 게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실망한 일도 환호할 일도 없는 2022년이었다.
주변 환경은 그렇지 못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국민이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면서 올해 내내 우리를 괴롭혔다. 마스크는 언제 벗을 수 있을까? 봄에는 산불이, 여름에는 집중호와 태풍으로 국민들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겨울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대참사가 온 국민을 트라우마에 갇히게 했다.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금리는 치솟아 돈 빌린 사람은 빈곤의 악순환을 겪어야 했다.
사실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내게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주사를 맞고 고열에 시달렸다. 백신을 맞고 혼쭐이 났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고 말았다. 사흘 정도 끙끙거리며 '이러다 큰 일 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떨기도 하였다. 주식 폭락으로 주머니는 텅 비었고, 은행에 내는 이자는 예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격랑 속에서 차분하게 연말을 맞게 된 것은 내게는 커다란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2023년은 올해보다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이 되면 별일 없이 잘 지나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올 연말에는 안 하던 짓을 해봤다. 이제까지는 새해 인사를 하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다운로드하여 카톡에서 사용했었다. 올해는 간단하게 나만의 연하장을 만들었다. 올해를 잘 보내고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나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보내온 '창조의 기둥'사진을 가져왔다. '창조의 기둥'은 지구에서 6500광년 떨어져 있는 독수리성운에서 성간 가스와 우주 먼지가 몰려 있는 곳이다. 세 개의 웅장한 기둥사이로 이제 막 탄생했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새로운 별들이 빼곡히 들어찬 것을 볼 수 있다. 이 성운을 보면서 새로운 기운을 얻기를 바랐다.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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