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부작이라서 시작하기가 겁났다. 다행히 내게는 추석 연휴가 있었다.
디즈니+ <무빙>(2023)은 국정원 특수요원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특수요원이다. 몸에 난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되고, 날개와 망토 없이 하늘을 날고, 특수 장치 없이 몇 킬로 떨어진 곳을 보고 듣는다. 로봇 수준의 파괴력을 가진 주먹은 예사다. 한때 잘 나가던 특수요원들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숨어 지내게 되고 이들을 찾아서 제거하려는 자, 프랭크(류승범)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문제는 특수능력자들의 2세다. 이들도 부모의 DNA를 물려받은 덕분에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자신의 특이성을 숨겨야 하는 처지다. 자신의 아이를 지켜려는 부모와 특별한 능력을 보유한 자녀가 가진 당혹감, 부모와의 갈등도 드라마의 큰 줄거리다. 아이들의 초능력은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에 가까울까? 드라마의 뒷부분은 북한의 초능력자와 싸움이 대부분이다.
드라마는 충분한 분량(무려 20부작이다.)을 확보하고 있기때문인지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냈다. 강풀의 원작 이야기도 충실하게 그려냈을 것이다.
재미로 치자면 요즘 망해가는 마블 영화보다는 낫다. 한국식 영웅이라 인간적인 면도 있다. 장주원(류승룡)의 순애보도 드라마의 감미료 역할을 톡톡히 했다. CG나 액션장면에서의 화면 처리는 할리우드에 못 미치긴 했지만 구설에 오를 정도는 아니었다.
조인성, 한효주, 류성룡, 차태현, 류승범, 김성균, 문성근, 박희순, 양동근 이름을 나열하기도 숨차다. 최고의 연기자들을 쏟아 넣은 덕에 몰입도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새롭게 등장한 젊은 배우들도 제 몫을 했다. 봉석과 희수 역을 맡은 이정하와 고윤정의 연기도 찬사를 받을 만하다.
스토리는 물음을 제기할 만하다. 추석 연휴 때 다 보고 지금까지 느낌을 적지 못하고 뭉그적 거린 것은 스토리 전개가 내게 준 타격감이 덜 했기 때문이었다. 감독은 재미 말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 하는 질문이 드문드문 내게 왔다.
초능력이란 것이 나쁘거나 틀린 게 아니고 그냥 다를 뿐이라고 희수(고윤정)는 이야기한다. 평균과 표준만을 고집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밍밍하게 돌아가겠는가? 많이 다르거나 조금 다르거나의 차이일 뿐이다. 그들도 치킨을 튀기고 손님들의 머리를 파마하고, 돈가스를 파는 우리 이웃이다. 벽이 부서지고 피가 튀지만 근본적으로 따뜻한 이야기다. 마음을 움직이게(Moving)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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